형편없는 나의 끈기에 대하여
2018-06-21

며칠전, 잠깐이나마 회사동료였던 분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4 기란다. 누구나 암에 걸릴 수 있다. 30 대라고 해서 예외없다. 태어난지 얼마 안된 갓난쟁이도 소아암에 걸리는 일이 다반사인데 30 대 후반정도면 암에 걸리는게 흔해빠진 일일지도 모른다(요즘 세상이 그렇다). 그럼에도 이 사실은 내 마음속에 큰 울림을 가져왔다. 한번이라도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해본 사람이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는 만족할 만큼 나 자신을 혹독하게 단련한적이 없다. 한마디로 끈기가 없었다. 작심삼일은 기본이고 뭐 하나에 빠져본적도 없다. 그럴듯한 취미가 없는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게임을 해도 금방 지루해지고, 운동을 해도 재미가 없다. 사회생활한지 10 년이 채 안됐지만 벌써 직종도 한번 바꼈다. 그나마 유일하게 꾸준하다고 할만한 것은 한달에 서너권 정도 책을 읽는 정도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손정의는 간염으로 3 년간 병상에 누워 지내면서 3,000 여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하루에 3 권 정도 읽으면 3,000 권쯤 된다. 나처럼 한달에 서너권 읽어서 총 3,000 권을 읽으려면 70 년쯤 걸린다. 지금 내 나이부터 시작해도 100 살이 넘는 나이가 되야 3000 권을 읽을 수 있다. 100 살이라니.

글쓰기에 대한 책을 몇권 읽고 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김민식 PD 의 <매일 아침 써봤니?>, 김애리의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를 읽었고, 지금은 서민 교수의 <서민적 글쓰기>를 읽는 중이다. 모두가 좋은 책이다. 조금씩은 다른 관점을 가진 책이지만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모두 비슷하게 말한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남과 비교하고 남을 따라가려는 삶을 살아온것 같다.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할때는 과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사람처럼 공부해서 멋진 집을 짓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강연을 듣고 책을 볼때면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지금은 뛰어난 개발자들이 해온 방식을 모방해왔다. 하지만, 남의 삶을 모방하고 남이 성공한 방법만을 차용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내 끈기를 갉아먹었다.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검증된 방법이기 때문에 성공확률이 높다. 하지만, 자기다움이 없는 상태로 아무리 남의것을 따라한들 잘될리가 없다. 자기다움을 찾는 일이 먼저다.

내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매일 글을 쓰기로 다짐했지만(주 5 일이면 좋겠다), 이것 역시 위에서 소개한 글쓰기 책에서 소개한 방법이다. 그럼에도 이를 선택하기로 한것은 '쓰기'라는 행위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쓰기, 특히 나에대한 쓰기는 반드시 자아성찰을 동반한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 내가 좋아하는것, 내가 싫어하는것, 나의 신념, 이런 주제들로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내 자신에게 되물을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작가들의 에세이 처럼 잘 쓸 필요도 없다. 일기를 쓰듯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쓰면된다.

꾸준한 글쓰기를 시도하는게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도 블로그를 통해 몇번이고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how(방법)가 잘못된것은 아니었다. what(무엇)이 잘못되어서 실패한것이라 생각한다. 블로그를 시작할때 언제나 어떤 분야의 전문적인 글을 쓰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미 성공한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고, 그들의 수준만큼 쓰고 싶었다. 하나의 글을 쓰기위해 여러 책을 읽고 자료를 찾고 분석하는 작업에 몇시간을 투자했다. 하나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 되었고, 글쓰는 습관이 들기는 커녕 점점 지쳐서 포기하기 일수였다.

조금 내려놓고 생각하기로 했다. 글을 잘쓰고 싶은 욕구는 더 커졌지만,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3 년간만 써볼 생각이다. 우선은 자신에대한 글을 쓰면서 자기다움을 찾는게 먼저다. 남들이 이뤄논 멋있어 보이는 삶이 아니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로 가득한 삶이면 좋겠다. 지금의 쓰기가 그런 삶으로 이끌어주길 바란다. 나도 언제든 지독한 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을 수 있다. 내 인생에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남을 모방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